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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스크랩] 원하시면 저를 (11/12 묵상)

뜰안지기 2009. 2. 14. 13:13

원하시면 저를 (11/12 묵상)  

<막1:40-42>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.  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 진지라.

 문둥병자가 예수께 왔다는 것은 온갖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.  
문둥병자들은 반드시 격리되어 있어야만 했고, 만일 사람들 사는 곳으로 들어모면 돌에 맞
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.   예수께서 문둥병자 수용소에 가신 것이 아닌 이상 이
병자는  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 예수님께 온 것이지요.  그만큼 간절한 심정이었음을 말
해 줍니다.  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.  불의한 세상에
서  남들보다 더 불의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,  그 불의한  세상 한복판에서도
어떻게 하든  하나님의  의로운  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  최선을  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.  
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예수님이 너무나
절실히 필요해서  모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 주 앞에 나오려는 사람도 있습니다.  그런 의
미에서  새벽기도의 필요성을  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 허다한데 이렇게 소수이지만
이 새벽을  주님을 찾는 간절함 마음으로 주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
에게 주신 복입니다.   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 시련과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
해도  그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 주님을 더 절실히 찾게해 준다면  그런 시련과 어려움은
단지  무의미한 고통이 아니라 분명 우리에게 복이되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섭리가 담긴
고통일 것입니다.
  이 문둥병자는  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 예수님 앞에서는 정말 겸손한
자세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.  ‘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.’  그렇게 절실한 상
황이면서도  주님 앞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부르짖어대지 않고 본문의 표현처럼 겸손히 꿇
어 엎드려서 모든 주도권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면서 간구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.
 ‘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.’  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‘원하시면’ 이라는 말입
니다.   반대로 말하면  원하시지 않으면 안해주셔도 좋다는 의미이겠지요.  한마디로 내가
깨끗케 되는 것은 내 손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에게 달린 문제임을 겸손히
인정하는 것입니다.   기도응답은 우리의 기도 솜씨에  달려있다기보다는 전적으로 주님께
서  알아서 하실  문제라는 것입니다.   우리가 기도하면서 이것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.  
기도는  응답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닙니다.  오히려 기도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
기고,  오로지 주님의 처분대로,  주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겸손히 전적
으로 인정하겠다는  믿음의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.  기도를 요령있게, 실력있게, 그리고 감
동적으로 드렸기 때문에  그 기도 때문에 응답이 좌지우지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.  
우리는  하나님께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.  오로지 모든 것은 하나님이 뜻에 달
린 문제입니다.
 그런면에서 우리의 기도가 너무 교만할 때가 많습니다.  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다 들어
주신다고  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.  내가 기도응답을 받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
하나님의 은혜이고  은총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기도 열심히 한 나의 공적이 개입되어서는
안됩니다.  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신앙의 공적으로 내세우지 마시
기 바랍니다.  남들보다 더 고생스럽게 기도하니까 내 정성을 봐서 더 잘 응답해 주시는 것
이 아닙니다.   우리가 새벽을 깨우든, 밤을 새워기도하든, 금식하면서 기도하든 그것은 내
가  그만큼 전적으로  주님을 의지한다는  겸손의 표시이고, 나는 그 만큼 부족한 존재라는
표시인 것이지 그 기도의 모습이 내 신앙수준과 믿음의 능력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.
 그러므로 기도는  늘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.   특히 부르짖는  기도를 드릴 때에 겸손함을
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.  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내 노력을 주님 앞에 앞세울 때가 있기 때
문이지요.   소리높여 기도하든,  적은 소리로 하든,  아니면 그저 주 앞에 묵묵히 머리숙여
기도하든 기도할 때마다 오늘 문둥병자 같은 겸손함과 주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잃지 말
아야 합니다.
  이런  문둥병자의 믿음의 자세에 대해서  예수님도  무엇이라 말씀하시며 응답하십니까?  
41절에  ‘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.’고 응답하십니다.  굳이 내가 원하노니라는 말씀
을 하시는 이유는  이 문둥병자의  ‘원하시면’ 이라는 겸손에 대한  응답입니다.  겸손한 자,
내 삶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에게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십시다.
  예수님은 너의 치유됨을  내가 진실로 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 문둥병자에
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의 몸에 대셨습니다.  네가 겪는 모든 고통과 아픔과 눈물을 내가
충분히 공감하고 있고, 너의 모든 고통을 내 안에 받아드렸다는 의미인 것이지요.  그 결과
는 깨끗하게 나음을 얻는 것이었습니다.
 주님은 육신의 질병,  마음의  얼룩진 고통과  상처를 다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.  우리가
주 앞에서  참된 겸손과  전적인 의지와  신뢰를 가질 수 있다면 언제든지 주님은 우리에게
온전한 치유와 회복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.

사랑의 주님, 내 안에 있는 모든 육체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받기 원합니다.  오직 주님에 대한 참되고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셔서 치유의 응답과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. 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,  아멘


출처 : ♡샬 롬♡혁윤이
글쓴이 : ♡ 샬롬♡혁윤이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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